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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에서는 고양이를 키운다.

서나찌 2018. 3. 11.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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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에서는 고양이를 키운다.

몇달 전 회식을 하고 다같이 나오는 길에 작은 체구의 아기고양이 한마리가 

2차를 갈지 말지 고민하는 우리 주변을 계속 맴돌았다.

고양이만 보면 길고양이건 집고양이건 호랑이건 (?) 좋아서 눈뒤집고 달려드는 나는 당연히 지나치지 못 하고 다가갔고

가까이가도 도망가질 않길래 손을 뻗었는데, 이게 왠 걸!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는게 아닌가.

혹시나 싶어 조심스럽게 안아들었는데 어머? 그래도 가만히 있다.

그 날 내가 패딩을 입고 있었으니 작년 말 초겨울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날이 추워 패딩 속에 안아들고 대표님한테 보여드렸는데 아니 ㅋㅋㅋㅋㅋ 우리 대표님, 그자리에서 데리고 회사로 가자신다.

회사에서 키우시겠다며, 그대로 2차는 회사 사무실로 옮겨졌다.


가는 길에 마트에서 술도 사고 안주도 사고 고양이 사료에 참치캔 까지 사가지고 올라가선 

회의실 한 켠에 남는 박스로 급조해서 고양이 집까지 만들고, 그대로 이 작은 길냥이는 우리 회사 식구가 되었다.

이 날 2차 자리에 함께 하지 않았던 직원들은 다음날 고양이를 보고 놀라는 사람도 많았지만 

정말 다행히도 고양이를 질색하는 사람은 없었다. 뭐, .. 있어도 티를 못 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기겁하는 사람은 없었으니 ..

다만, 이 아이가 들어오고 나서 몰랐던 고양이털 알러지를 발견하는 사람은 종종 있긴 했다.



 


데려온 지 얼마 안됐을 무렵! 나는 겁도 없이 새까만 옷을 입고 고양이를 안고 있고. ㅋㅋㅋㅋ

오자마자 꼬질꼬질해서 목욕을 시키고, 모래도 사오고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직원들이 집에서 간식도 가져오고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이 싫증나서 더이상 안 갖고 노는 장난감들도 가져오고, 회의실에서 휴게실로 집을 옮겨줬다.

덕분에 이사람 저사람 다들 예쁘다고 구경하고 쓰다듬고 하는데도 얘는 원래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인지 귀찮아하거나

싫어하기는 커녕 오히려 먼저 사람에게 다가와서 놀자고 앙앙거린다.

고양이라면 늘 환장하고 달려드는 나지만, 고양이라는 동물의 특성상 .. 

그럴 때 마다 외면받고 ... 무시당하기 일쑤였는데 얘는 달랐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나에게 다가오고 의자에 앉아 이리오라고 무릎을 탁탁 치면 폴짝 뛰어 올라오고

얼굴을 쓰다듬으면 더 만져 달라고 손에 코를 비비고 핥고 .. 이건 뭐, 강아진지 고양인지.

이 아이의 생존전략이었을까, 회사에 데려온 지 거의 6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그 사이 새로 온 직원들도, 기존 직원들도,

고양이를 원래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얘는 애교가 많아 좋다고들 얘기한다.

오죽하면 주말에도 회사에 나와 밥과 물을 챙겨주는 사람, 겨울에 춥다고 집에 있는 이불을 들고 오는 사람, 

장난감도 가져오고 스크래쳐까지 주문하는 사람 등등.

고양이는 키우는게 아니라 모시는 거라더니. 한편으론 내가 얘를 안고 있어서 데려오게 된 거기도 한데

다들 싫어하지 않고 예뻐해줘서 괜히 내가 뿌듯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얘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게 진정한 인생역전, 아니 묘생역전이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이 쪼끄만 애가 계속 길에 있었으면 이 험한 길고양이들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6개월동안 단 한번도 하악질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인데, 계속 길에 있었다면 

어디서 못된 사람들을 잘못 만나 해코지를 당했을 수도, 다른 무서운 고양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행스럽게도 인연이 닿아 여기로 데려와서 밥도 배불리 먹고 사랑도 받고 있구나. 


그래서 요즘 나는 얘를 돼지라고 부른다.

대표님이 이름을 지어주긴 했는데, 이게 .. 사람이름이라ㅋ 나는 아직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ㅋㅋㅋㅋ

그런고로 부를만한 이름이 딱히 없었는데, 요즘 ... 살찐걸 보면 .... 

심지어 돼지야~ 라고 부르면 아주 귀엽게 야옹~ 하고 대답한다.

ㅎ_ㅎ 찰떡 이름을 지어준 것 같아 괜히 또 뿌듯. 





고양이는 살이 좀 쪄야 귀엽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특유의 나른한 매력도 더더욱 부각된다고 생각해서 뚱뚱한 고양이를 좋아하긴 하는데,

너는 왜 머리통은 그대로 작은데 배랑 엉덩이만 커지는거니 ㅋㅋㅋㅋㅋ





이렇게 ....

이게 지난주에 찍은 사진이니 가장 최근 모습. 

엄마에게 보여줬더니 놀라선 고양이는 어디가고 왠 돼지가 여기 있냐며 ㅋㅋㅋㅋㅋ

처음에 한손으로도 안고 다니던 녀석이 지금은 잠깐만 안고 있어도 무거워서 팔이 저릴 만큼 뚱뚱해졌다.

길고양이 시절의 습성때문인지, 밥 그릇을 채워 놓으면 늘 남기지 않고 다 먹어버리더니 결구 ㄱ... 

요즘은 그래도 .. 배부르면 안 먹는 것 같긴 하다. 거기에 간식까지 챙겨주니까 배가 나오지 않고 못배기겠지... 




  


회사에 고양이가 있으니까 우리 엄마는 내가 집에서 고양이 키우자고 조르지 않아서 좋다고 하고, 

나는 나대로 회사에서 일하다가 쉬는시간에 잠깐씩 고양이한테 가서 놀아주면서 힐링하니까 좋고.


다만 우리 회사 특성상 여느 잡지나 인터뷰같은 곳에서 봤던 것 처럼 

'일하고 있는데 고양이가 와서 키보드를 못 누르게 막아요!' 같은 행복한 고민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알러지 있는 직원들도 있고, 업무에 방해가 되서 그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둘 수가 없기 때문에, 

요즘 얘는 대부분의 시간을 베란다에서 보낸다.

좁은 공간에 있으니 우울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한데, 막상 안에서 노는 걸 보면 .. 생각보단 잘 지내는 것 같다.

틈만 나면 탈주해서 사무실을 신나게 뛰어다니기도 하고 ㅋㅋ 

요즘은 햇볕이 좋아서 그런지, 높이 쌓아둔 파티션 위에 올라가서 햇빛을 받으며 늘어지게 자기도 하더라.

그걸 보고 있으면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마음이 풀려버리는 기분이다.

역시 고양이는, 힐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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